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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태 그 후 ‘개미’만 죽어난다
동양증권 사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 추진에 나섰다. 이들은 동양 사태가 현재현 회장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처음부터 계획된 사기라고 주장한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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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승인 2014.03.03 08:21:22
“항상 원금보장이 되는지부터 물어봤다. 이율이 높으면 당연히 의심부터 하게 되지. 하지만 직원은 매번 ‘당연히 된다’고 했다.” 이순자씨(49)는 2013년 동양 사태로 1000만원을 잃었다. 그녀는 2010년부터 경남 창원의 한 중공업 하청공장에서 일을 했다. 월 120만원 남짓을 벌었고, 이 중 일부를 동양증권에 맡겼다.
이씨가 애초 동양증권을 찾았던 것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commercial paper)을 구매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저축용으로 쓸 CMA(자산관리계좌) 통장을 개설하려고 했다. “CMA 통장이 일반은행 통장보다 이율이 1~2% 높다고 하더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애초 통장에 넣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서민들은 1000원, 2000원이 아쉽다. CMA는 하루만 넣었다 빼도 이자가 4%고, 예금자보호법으로 정부가 5000만원까지 보장해준다고 해서 믿고 넣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동양 사태 피해자 이순자씨(사진)는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숙식하며 정부 기관 앞에서 노숙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윤무영
동양 사태 피해자 이순자씨(사진)는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숙식하며 정부 기관 앞에서 노숙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증권은 이씨에게 동양 계열의 회사채와 CP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이미 동양증권은 2007년부터 CMA 가입자들에게 ‘동양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에 투자하라’고 권유해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 등으로 동양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면서, 은행 등 돈 많은 기관투자가들은 동양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외면하고 있었다. 동양의 자금조달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일반 주부, 노인, 학생, 직장인들은 알 턱이 없다. 이씨를 비롯해 약 5만명이 1조7000여억 원 규모의 동양그룹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샀다.
그러나 지난해 9월30일과 10월1일 이틀에 걸쳐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시멘트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의 채무가 동결된다. 그제야 피해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원금은 보장된다’던 직원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씨는 “남아도는 돈을 투자했다가 실패한 것 가지고 왜 우는소리 하냐고? 높은 사람들은 동양이 이렇게 될 거 미리 다 알고 빠져갔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은 사실이다. 동양 사태의 특징은 피해자 명단에 은행과 기관투자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투자부적격 등급(투기등급) 회사채와 CP 중 90%가량을 개인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금융시장 상황에 밝지 않은 ‘개미’들만 당한 것이다.
이씨는 억울해서 국민권익위원회, 청와대, 감사원 등을 신발이 닳도록 찾았지만 매번 ‘금융감독원에 가서 해결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동양과 한통속인데 가서 뭐하나. 답답하다. 이건 불완전 판매나 금융 사고가 아니라 사기다.”
불완전 판매냐, 금융 사기냐
금융감독원의 견해는 이씨와 다르다. 금감원은 동양 사태를 ‘불완전 판매’의 사례로 한정짓는다. ‘불완전 판매’란, 금융투자사가 특별히 고객을 속일 의도는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해당 금융상품의 위험등급이나 원금보장 여부를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동양 사태를 ‘정권과의 유착이 빚어낸 명백한 사기’로 본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차장은 “채무를 갚을 의사와 능력이 없는 회사가 어음을 무작위로 발행해 조직적으로 판매한 명백한 사기다. 기업어음(CP) 같은 위험한 상품이 규제 없이 거래될 수 있는 것도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금융시스템의 문제와 동양의 의도적인 불법·탈법이 만나서 직접 피해자만 5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금융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월15일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회원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월15일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회원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동양을 돕기 위해 일부러 개인투자자들의 동양 회사채와 기업어음 구매를 막지 않은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2013년 4월,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 시행 시기를 같은 해 7월에서 10월로 별다른 이유 없이 미뤘다. 개정안에는 증권사가 계열사의 투자부적격 등급 상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즉, 동양증권은 동양 계열사 발행 기업어음 등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금융위가 이 조치를 미룬 3개월 동안(7월에서 9월 말 사이) 동양증권으로부터 동양 계열사 회사채 등을 매입해서 피해 본 고객이 2만명가량이다. 피해자의 3분의 1 이상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법정관리 단계에 들어가기 직전 동양이 얼마나 전방위로 회사채와 기업어음 판매에 열중했는지를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과 9월, 미국과 베트남 방문 때 동양 현재현 회장을 경제사절단에 포함시켰던 사실도 피해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동양은 웹진 <동양소식> 2013년 6월호에 현 회장이 방미 경제사절단으로 박 대통령과 동행한 사진을 싣고 이를 투자자 유치에 이용했다.
한편 검찰 수사는 동양그룹 경영진의 배임·횡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1월13일 현재현 회장 등 경영진 4명이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고의로 계열사 5곳의 법정관리를 신청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동양 사태 피해자에게 피해보상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2월19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건수가 워낙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고, 2월20일 동양증권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별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2월21일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증유의 금융사기 사건을 저지른 책임자 처벌과 함께 신속한 피해 구제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증권 관련 ‘집단소송(class action)’을 추진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증권 거래에서 피해를 입은 다수 중 1인 혹은 수명이 대표 당사자가 되어 수행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일컫는 말이다. 승소 시 전체 피해자가 판결의 혜택을 다 함께 누리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민사소송 절차를 밟으려는 피해자도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차장은 “이기면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자본이 지불하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유사 금융사기 사건을 예방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취재 도움:이세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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