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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판 반 월가시위, “금융 공공성을 회복하라” (폴리뉴스)
등록일 2011-10-27 15:57:07 작성자 운영자
조회수 4400 연락처  
한국판 반 월가시위, “금융 공공성을 회복하라”
1% vs 99% 구도, 국내 진보진영 시위 주제 바꾸나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진행된 반월가시위 장면


9월 17일 미국 뉴욕시 주코트 공원에서 시작된 반 월가시위가 한 달만에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협회, 참여연대 주도로 구성된 금융소비자권리찾기 연석회의는 10월 15일 오후 1시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에서 월가 식 금융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와 금융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3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99%의 행동준비팀 주도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라. Occupy 서울 국제 공동 행동의 날’ 집회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아래 진행된 미국의 시위와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구호아래 벌어진 한국판 월가 시위는 양 국 간 금융구조의 차이만큼이나 성격이 다르다.

우선 미국에서 벌어진 오리지널 반월가시위는 미국의 경제파탄 및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고도 수천억원의 인센티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월가 금융사 임직원들에 대한 응징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판 월가시위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에 갖췄던 금융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것 다르다.

이와관련 백성진 금융소비자협회 사무총장은 “금융당국은 금융의 공공성을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저축은행 사태 등이 발생하게 됐다”며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힘없는 소비자 서민들이 나서야 했고 전 세계의 반 월가시위 흐름에 편승해 우리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모든 노동시위 반월가에 맞추는 듯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여의도 집회는 30여 명의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과 외국인 유학생 등 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투기자본 반대, 론스타 처벌 등 글로벌 투기자본의 폐해를 지적하고 금융공공성 회복에 금융감독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차분히 벌어졌다.

이날 시위장소에 KT노조와 부동산 피해자들 등이 일부 함께 참가했지만 집회 행사의 진행과 주관은 금융소비자협회와 투기자본감시센터로 구성된 주최측에 의해 질서있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투기자본 문제, 반 자본주의, 한미 FTA 반대, 이명박 정권 타도 등 갖가지 주제와 입장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주최측의 행사진행본부에서 월가 금융자본에 대한 성토와 한국 금융시스템의 공공성 회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200여 명의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조직원들이 빨간 색 유니폼을 입고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또 저축은행, 대형 건설사, LH공사 등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서민들은 자신들만의 시위에 열중했다.

이와관련 99%의 행동준비팀 한 관계자는 “한미FTA 반대, 건설피해자, 금융 개혁 등의 목소리 모두 미국을 대표로 하는 월가 식 자본주의에 의해 한국에서 발생한 99%의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모두 연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반월가시위대


월가식 자본주의에 분노한 미국인들

“…를 점령하라”라는 구호아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월가 시위는 지난 9월 17일 미국 뉴욕시 주코트 공원에서 시작됐다.

이날 미국의 30대 청년 실업자 30여명이 주코트 공원에 모인 후 세계적 금융 중심지라고 불리우는 월 스트리트 한 복판까지 피켓 가두시위를 벌인 것이 최초다.

이들은 월가 금융사들의 최고 경영자들이 미국을 경제파탄의 위기에 빠뜨렸고 그 때문에 국가적 실업률이 높아져서 자신들이 직장을 잃는 등 어려움을 당했는데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 커녕 수백만 달러 이상의 퇴직금을 챙겨 떠나는 행태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단지 30대 30명이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는 피켓을 들고 외치던 인원들 옆으로 그들의 구호에 공감하던 행인들이 하나 둘 늘어서면서 시위는 순식간에 700여 명으로 불어나게 됐다.

같은 달 26일에는 9.11 음모 영화로 유명한 세계적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시위대에 동참했고 28일에는 유명 헐리우드 여배우 이날을 기점으로 뉴욕에서의 시위가 워싱턴 D.C, 보스턴, 필라델피아, L.A.,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시애틀 등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거대 금융 세력 CEO들의 응징을 외치며 미국 전역으로 퍼진 반월가 시위의 성격은 10월 1일을 기점으로 월가식 금융자본주의로 촉발된 양극화 현상에 대한 저항으로 바뀌었다.

이 때부터 “우리는 미국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값 걱정,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반 월가 시위는 10월 15일을 기점으로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남미,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들의 시위 컨셉은 1% 부유층에 대한 99% 시민들의 저항운동이었다.


지난 17일 여의도를 가두행진하고 있는 반월가 시위대


미국의 반월가시위, 2002년 한국의 벤치마킹

이번 월가시위와 관련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미국의 글로벌 금융자본 운영자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월가에서 벌어진 30대 실업자 30명에 의해 우연찮게 결집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놨다.

그러나 사실 월가에서 처음 시작된 30대 실업자 30명도 그 후에 전 미국으로 확산된 반 월가 시위 물결도 철저하게 논의되고 계획된 시위였다.

특히 최초 시위 구호인 “OCCUPY WALL STREET”구호는 지난 9월 15일 캐나다의 비영리 진보매체 애드버스터드가 9월 중순부터 자사 웹사이트와 전세계 유명 쇼셜네트워크, 포털사이트 등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의 제안에 동의한 미국인 실업자 30명이 9월 16일 쥬고트 공원으로 모였고 공원에서 하룻밤 야영을 한 다음 월가의 뉴욕거래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른 것이 시위의 최초다.

미국의 웹사이트 it.com이나 뉴욕타임즈 등에 따르면 30대 실업자의 반 월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순식간에 모인 700여 명의 시위대들 중 상당수가 쇼셜 미디어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월가 시위대에게 등장한 새 구호 1%에 저항하는 99%도 반 월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월스트리트로 온 23세의 미카 체임블린이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일자리가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다. 단지 1%의 사람들이 99%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발언이 쇼셜 네트워크를 통한 토론에서 많은 지지를 얻으며 만들어졌다.

사실 반월가시위 형태의 집회와 시위는 우리나라에게 낮선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2년에 쇼셜 미디어 네트워크의 위력을 절절히 체험했다.

월드컵 시즌 붉은악마 물결은 스포츠를 통한 국가적 감동의 물결을 맞봤고 노사모 운동은 참여정부를 탄생시켰으며, 효순 미선양 추모를 위한 촛불시위 물결은 주한미군 주둔협정의 개정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쇼셜을 통해 소통하고 촛불·노란 손수건 붉은 티셔츠를 통해 일체감을 이끌어 내 큰 힘을 발휘했다.

인도의 간디가 우리나라 3·1운동을 벤치마킹하여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일으켰듯 이번 월가 시위도 2002년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쇼셜의 힘을 벤치마킹 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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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01&num=136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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